검단산 산행
붕으로부터 연인산을 가자는 전화가 왔다.
팔당역에서 하차해서 오르면 된다는 내용과 함께...
순간 예봉산은 바로 머리에 떠 오르는데 도대체 연인산은 사실 금시초문이다.
인터넷 검색을 이용해 확인해 본 바 경기도 가평 쪽으로 나와 있다.
도립공원으로 지정이 돼 있고.
가평이라면 붕이 말하는 팔당역 하고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원격지인데 좀 이상태 싶다.
하나, 붕도 대충은 알아 봤을터이니 일단 의심의 심정을 접기로 한다.
출발 D-1
원래 성격이 산행지는 반드시 도상 확인을 해 보는 버릇이 있는지라
등산 코스도 정할 겸 해서 검색해 들어가는데 이건 아무래도 불이 얘기한 위치와는 확연히 다르다.
이건 뭔가 착오가 있다 싶어 다시 붕에게 전화를 넣고 확인 작업에 들어가 본 바
확실치 않고, 붕도 또다른 분에게 들은 것이라서 혹, 예봉산일지도 모른다는 전언.
일헌 된장~
급히 산행지를 연인산에서 예봉산으로 바꾸기로 했으나 사실 예봉산은 대면을 한
기억이 있어 건너편쪽 검단산으로 급 선회를 하기로 의기투합한다.
검단산은 강동인들에겐 자주 이용하는 산행지일 테지만 우리는 웬일인지 아무도 경험자가 없다.
사실 사진은 OKmt라는 사이트를 통해서 자주 봐 온터이고
한강을 끼고 산행하는 관계로 조망이 아주 좋다는 글을 많이 봐 왔다.
하여간 D-day는 됐고, 일단 팔당까지 간 후 택시로 이동하기로 합의
목적지에 도착한다. 중앙선? 인가하는 그 노선은 온통 등산인으로 꽉 차있다.
삼삼오오 모여 얘기하는 모습에서 어떤 낭만이 엿 보인다.
팔당역에 도착하여 이동할 택시를 찾으나 차라리 가뭄에 빗방울 찾는 게 쉽지 싶어
광역버스를 타고 하남으로 입성, 산곡초등학교 입구로 도착한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버린 늦어버린 시각이었으나 그 시간에도 입산하는 산객들 한 둘이 아니다.
원거리 산행이나 종주 시간이 길었다면 서둘러 움직였을 터이나 기 등산로 상황을 살펴본 터라
유유자적하면서 신고식을 마친다.
일찍 서둘러 나오느라 아침도 해결을 못한 분이 입산 주를 강력히 천명하여
할 수 없이 식당에 쭈삣거려 봤으나 주로 오후 손님을 맞는 관계로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한다.
입산하는 발걸음은 경쾌했고 여느 산에서 볼 수 있는 그냥 그런 들며 리로 관찰이 된다.
건너편 산은 예봉산으로 보인다.
정상에 도착하여 정상주를 간단히 걸친 후 비로소 조망 구경에 나선다.
두물머리를 중심으로 북한강, 남한강 그리고 경안천으로 갈라지는 아주 조망이 좋은 산이다.
정상주를 즐기면서 한 분이 정상주를 파는 아저씨께 八堂이란 유래를 묻는다.
그분 얘기를 빌자면, 여덟 군데의 아름다운 경치 좋은 곳이 있음을 빌어 팔당이라 했다고 한다.
;;
하지만 본인이 언젠가, 어디선가 그 유래를 읽은 기억이 있고, 그 옛날 뱃사람들이 한강의 무사 도강을
기원하는 여덟 개의 사당이 있어서 그곳을 팔당이라고 했다는 얘기를 했더니 당최 믿어 주는 이가 없다.
사실 좀만 생각을 한다면, 아름다운 경치는 분명 景이란 단어가 필히 들어갔을 터이다.
설악을 예로 빌자면 아름다운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은 望景臺 내지는 萬景臺라고 칭한다.
그러나 팔당은 분명 건물을 지칭하는 堂을 썼고, 그렇다면 그 당은 내가 알고 있는 성황당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냥 내 마음속으로만.... 정답이란 어차피 없으므로..
그 유명한 건국신화의 곰과 마늘 얘기도 결국 口傳과 說에 불과할 진대, 하물며 그 팔당의 유래라는 것이
정설이 어디 있겠냐 싶어 그 정도로 마무리했다.
하여간 그렇게 오늘 검단산 산행도 정상을 찍고 하산길로 접어든다.
하산로는 애니메이션고교 쪽으로 한다.
등로 보다는 좀 더 가팔랐지만 그렇다고 힘든 코스는 아니란 생각이다.
사실 코스보다는 그날그날 컨디션이 더 좌우되는 경우가 많기도 하다.
하여튼 오늘 검단산 산행은 그렇게 마무리를 하게 된다.
가스는 없었고, 조망은 좀 시원찮었어도 그만으로 만족을 한다.
산은 오르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으므로~~
문제는 하산주에 있었다.
항시 생각하는 바이지만 주님이란 결코 과해서는 아니 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수컷끼리 만나 권주가를 읊다 보면 과하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죄 없는 몸뚱이는
혹사를 당해야 한다는데 있다. 주님이란 적당한 기름칠 정도로 그쳐야 진가를 발휘하지
그 절제력을 잃으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물건이나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이다.
또한 입산 동기라는 것이 건강을 염려함이니 만큼 취식에도 항상 꺼림을 잃지 말자는 생각이다.
그래야만 산행의 의미를 찾을 테니까. 과유불급이란 말도 있잖은가!
처음 산행을 시작했던 때 만 해도 산중에서의 음주는 절대 금기시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분들과 어울려 동반산행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주님 섬기는데 혈안이 됐고
그로 인해 나의 산행 불문율이란 것들이 점점 퇴색되고 있었다.
이제 다시 초심을 지키는 산행으로 방향 전환의 필요성이 절실해졌음은 물론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난 주님을 필요 이상으로 섬기는 우를 범하고 있고, 그로 인해 고통을 감래 해야 했음이다.
물론 그 감래라는 것은 뼈을 에이는 고통이 뒤따랐고...
다시는.. 끄~응..